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 문학적 건망증
4편의 글로 묶여진 단편소설집
4가지 이야기중 특히 '문학적 건망증'을 읽으며 깊은 공감과 위로(?).
단순히 독서가 어떤 욕망 그 자체가 되어버리진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식의 습득이외에 삶과 의식의 변화를 수반해야하는 것이 독서의 목적이라면
기계적인 다독과 찰나로 끝나버리는 깨달음은 지양해야 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싶어지는 책들이 자꾸 가지를 뻗어가는 걸 보며
급한 마음이 생겨난다.
욕망하기로 끝나는 독서가 아니길,
'서늘한 이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가의 얼굴(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_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0) | 2014.01.27 |
---|---|
서평은 쓰기가 귀찮고- (0) | 2014.01.14 |
바울_차별과 불평등의 장벽을 넘어서, 김호경 (0) | 2013.09.05 |
몰락의 에티카, 신형철 평론집 (0) | 2013.08.24 |
생은 다른곳에_ 밀란 쿤데라 (0) | 2013.07.27 |
네 번째 이사를 마쳤다
끝난 줄만 알았던 배낭여행은 서울 관악구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즌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낙성대동에서 서림동 신림동을 전전하며 둘 곳 없는 살림살이를 바라보며
말일이 다가올 때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앞이 보이지 않아 끙끙대는 밤을 보내야했다
보증금이 없는 나로서는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는 집을 찾는 다는것은 불가능했고,
계속 해서 임시 거처만을 전전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조차 보장되지 못했던 무수한 밤들
3개월동안 네번의 이사를 하며 내 마음은 참 크게도 오르락 내리락 했던 것 같다
원망스러웠던 그 때 그마음을 돌이킬 수 있었던 건
"수경아, 나는 머리 둘 곳도 없었단다."라고 속삭이시던 예수님의 음성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고 배우고 싶다던 내 고백을 하나님이 아셨구나.
하나님 내게 이렇게 가르치시는구나
머리 둘 곳 없는 이의 실존적인 고독과 배고픔이 어떤것인지
하지만 무엇이 참 기쁨이고 생명인지
그래서 이상황을 거뜬히 견뎌내고도 남을 만한 충만함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고 고백할 수 있었던 시간
어젯밤은 새로운 방에 누워
왜 이렇게 넓은 방이 이정도로 싼 가격에 나왔을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나(다리가 오십개쯤 달린 벌레를 한마리 종이로 덮어놓기는 했다 ㅠ), 귀신이 나오나?
그런 고민을 할 정도로 정말 싼 월세에 넓은 방을 얻게 되었다
3개월의 긴 관악구 여행을 마치고 조금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방이 생겼다
감사하지만,
더 감사한 것은 따뜻한 방이 주는 안락함보다
주님을 바라봄이 내게 더 안전하다는 것을
삶으로 한 번 더 알게 되었다는 것.
또 다시 수백번 흔들리겠지마는 그래도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아내고 살아가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