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다/:여행수첩:2012. 11. 1. 21:25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앞 뒤로 비석같은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으니 

한없이 늘어진다


하나님, 기차는 어디에서 타야할까요, 저 글씨는 뭐라고 써 있는걸까요

왜 숙소는 간판이 안보일까요, 도대체 입구가 어디일까요

지난 밤, 그리고 오늘 아침,

나는 하나님이 그토록 간절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렀던 탓인지 배낭의 무게가 확연히 무거워졌다

정말 하나를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들던지-


무거운 배낭을 낑낑거리고 숙소계단을 오르면서 그런생각을 했다


조금만 한 곳에 내 집처럼 머물러도 무언가 더 누리고 싶고 갖고 싶은 마음에 

물통하나 더 생기고, 양말하나 더 생기게 되어

결국은 어디로든 떠나야 하는 나를 짓누르는 무게가 되는 걸 보면서

이 세상 나그네처럼 살다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상 평생 있을 것처럼 하나 둘  갖게 되다가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엉덩이가 무거워져 그 자리를 뜨기가 얼마나 어려워지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제든지 부르심에 대답할 수 있는 삶 속에 민감한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_

뻬쩨르, 

고골이나 도스토옙스키 책을 읽으면서 수없이 상상해 본 도시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그 지하골방이나,

고골의 글 속에 묘사되었던 네프스키대로의 명과 암

외투를 잃은 주인공이 떠돌았던 그 차가운 골목들


생의 질척임과 부조리의 거대한 벽앞에 분투하는 인생들

왠지 이 도시의 회색빛 벽 앞에서 그 수많은 인생들의 분주한 걸음들이

계절이 지듯 사라졌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오후1시가 되어도 해가 뜨지 않는 것처럼 어둡다


짧게 왔다가는 이 여행자는

사랑하는 작가들이 이 도시의 내음을 맡으며 인생을 써내려갔음을 

그저 한 조각 맛 본 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하다




*

참고로 내 블로그 이름은 고골의 '외투'를 말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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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키 작은 프리데만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