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앞 뒤로 비석같은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으니
한없이 늘어진다
하나님, 기차는 어디에서 타야할까요, 저 글씨는 뭐라고 써 있는걸까요
왜 숙소는 간판이 안보일까요, 도대체 입구가 어디일까요
지난 밤, 그리고 오늘 아침,
나는 하나님이 그토록 간절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렀던 탓인지 배낭의 무게가 확연히 무거워졌다
정말 하나를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들던지-
무거운 배낭을 낑낑거리고 숙소계단을 오르면서 그런생각을 했다
조금만 한 곳에 내 집처럼 머물러도 무언가 더 누리고 싶고 갖고 싶은 마음에
물통하나 더 생기고, 양말하나 더 생기게 되어
결국은 어디로든 떠나야 하는 나를 짓누르는 무게가 되는 걸 보면서
이 세상 나그네처럼 살다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상 평생 있을 것처럼 하나 둘 갖게 되다가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엉덩이가 무거워져 그 자리를 뜨기가 얼마나 어려워지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제든지 부르심에 대답할 수 있는 삶 속에 민감한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_
뻬쩨르,
고골이나 도스토옙스키 책을 읽으면서 수없이 상상해 본 도시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그 지하골방이나,
고골의 글 속에 묘사되었던 네프스키대로의 명과 암
외투를 잃은 주인공이 떠돌았던 그 차가운 골목들
생의 질척임과 부조리의 거대한 벽앞에 분투하는 인생들
왠지 이 도시의 회색빛 벽 앞에서 그 수많은 인생들의 분주한 걸음들이
계절이 지듯 사라졌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오후1시가 되어도 해가 뜨지 않는 것처럼 어둡다
짧게 왔다가는 이 여행자는
사랑하는 작가들이 이 도시의 내음을 맡으며 인생을 써내려갔음을
그저 한 조각 맛 본 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하다
*
참고로 내 블로그 이름은 고골의 '외투'를 말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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