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다/노르웨이2012. 12. 7. 20:09



노르웨이에서 보는 스웨덴과 핀란드는 정말 물가가 싼 나라.

숙소에서 만난 유럽사람들도 혀를 내두르는 물가.

어떤 도시는 아무리 뒤지고 뒤져봐도 제일 싼 숙소가 하룻밤 15만원이고, 싼 지역은 아무리 싸다고 해도 7만원 이상이다.

2시간 버스를 탔는데 차비는 10만원이 나오고,

택시의 기본요금은 2만원부터 시작한다.

가끔 가격을 물어보고 나서 내 귀를 의심한다.

엽서 5장과 우표 5장을 골랐는데 5만원이라고 한다.


그렇게 노르웨이 14일째. 

그 중 11일을 북극해의 섬마을 호닝스버그에 박혀 있어야만 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그 분의 위로를 모든 것으로 삼고, 그런 믿음으로 상황에 두 눈을 감고 북유럽에 발을 내 딛었지만 

결국 현실이라는 것은 숫자 싸움이 되고 만다.


애초에 편도표 한장들고 비행기에 타는 미친짓이나 

도착하니 5천원이 남았던, 그렇게 시작해야 했던 호주여행이나

이틀밤을 자면 빈털털이가 되는걸 알면서도 핀란드로 향하고 노르웨이로 가야했던, 

그렇게 수많은 일들은 부르신 하나님만 바라보지 않으면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열흘을 넘게 숙박료를 지불하지 못하면서 70만원을 빚진 빚쟁이가 되면서도 

저 하늘의 별을 지으신 분이 내 아버지이시고, 온 세상의 주인, 돈을 내지 못해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 숙소의 주인임을 나의 존재로 고백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 분이 날 부르셨다 믿지 않으면

나는 그저 북극 섬나라에 홀로 버려진 고아같았다.

차라리 집에라도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더 이상 여행할 힘이 나질 않는다고, 이상황에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거냐고

이 곳의 긴 밤과 꼭 같은 막막한 시간들.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뒤로 돌아설 수도 없는 상황속에서 오랜시간 멈춰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너무 두렵기만 하다.


보통  '여행'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떤 잉여로운 일, 또는 쉼을 상징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게는 처음부터 여행은 부름심의 치열한 현장, 매번 새로운 전쟁앞에 서 있어야 하는 가나안을 향하는 길고 긴 여정이었다.


그 속에서 내가 자꾸 걸려 넘어지는 것은 '사람들에게' 여행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이다. 라는 그 전제이다. 

사람들이 여행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꿈과 소망 나아가 환상.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숙박비를 내지 못해 열흘간 울고 불며 쳐박혀 있어야 할 때도. 

편도표 한장이 전부인 내가 정말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떠한 기대도 하지 못한 채 비행기에 올라야 하는 순간에도, 

오늘 하룻밤을 자면 아무것도 없는 내일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한 그 순간에도 누군가의 '부럽다'를 말없이 그저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곳의 그럴듯한 사진 한 장은 내 안의 치열한 싸움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잘 포장해준다.


비행기에 오르는 일이, 국경을 넘는 일이 단 한번도 기대에 넘친적이 없었다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여행을 간다면서도 하루 앞 날 도 계획 할 수 없는, 당장 생존의 문제로 서 있을 수 밖에 없는, 

그 아름다운 풍경앞에서 내일 하루 먹고 살아갈 문제로 남몰래 걱정하고 있는 내가 어떻게 기대에 넘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일도 하지 않고  29번째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굉장히 부러운 사람으로 비춰진다. 

아 말 못할 이 아이러니.



하지만 행여 사람들에게 잉여로운 일로 보이는 '여행'일지라 할 지언정, 

내게는 그 분이 나와 함께 걷고 싶어하는 길이고, 믿음으로 매 순간 서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는 

그 분이 내게 가르치고 싶어하시는 삶의 현장임을 잘 안다. 

그러나 나 역시 벼랑끝으로 내몰려 떨어져야 하는 순간에는 이 여행은 내게 너무 과분하다고, 나는 할 수 없다고, 이게 꼭 필요한 것이냐고 

그러니 그만두고 다 놓아버리고 싶다고 말하며 나 역시 사람들과 같은 시선으로 이 여행을 바라보게 된다.


아무도 알 지 못하는 벼랑끝의 은혜가 긴 여행의 온 시간을 다 채우고도 넘친다. 그래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직장인, 학생, 사역자, 봉사자' 이런 어떠한 타이들도 가질 수 없는 나는, 

그래서 어떠한 소속감이나 안정감도 갖을 수 없고  어떠한 당위성도 갖을 수 없는 나는-

그래서 벼랑끝에서 그저 하나님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바라볼 수 없는 나는-

그 분과의 이 길고 은밀한 동행 속에서 오직 그분만이 내 모든 안정감이 되는 것을 체득하여 알아간다. 


모든 것을 다 걸고 나와야 했던 여행이지만 

당장이라도 내일 이 여행을 마침표가 찍혀야 한다고 하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돌아서야만 하고,

반대로 아무것도 없이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가진사람처럼 서 있어야 하기도 한다. 


내 삶의 언어가 보통사람들과는 너무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두렵다.

모두들 그럭저럭 살아갈 때 

나는 왜 매 순간 극에 치달아 살점을 떼어네는 듯한 결정을 해 나가며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님만으로 전부인 삶임을 고백하지만, 

하나님이 전부라 고백하였기에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벌거벗겨 길에 버려진 듯 한 순간을 마주해야만 한다.


그래, 은혜임을 알지만, 

때로는 삶에 안전장치를 쥐고 조금 쉬운 길을 가는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내가 얼마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인지를 무기력하게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호닝스버그에서의 시간을 그대로 어깨에 이고 

트롬소로 향하고 있는 이 여정.


그분이 다시 나를 위로하시지 않으면 나는 한걸음도 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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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키 작은 프리데만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