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절반 정도 읽다 덮어둔 카프카의 책을 다시 들었다
다시 읽은 '변신'과 '판결'은 여전히 난해했지만
그 황당한 이야기들이 왜 사랑을 받는지는 책장을 덮는 순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읽지 못했던 뒷부분의 단편들은 그 대표적 소설과 상통했다
카프카가 그리는 인간은 언제나 지나칠 정도로 나약하다
'난간으로 뛰어든 <판결>의 게오르크나,
괴물로 <변신>되어버린 그레고르
<학술원에의 보고>의 화자인 사람이 되기로 한 원숭이'
모두들 단순히 기능하는 인간으로 존재하는 실존일뿐이다-
신앙인에게는 특히 실존의 한계를 깨닫는 것 자체가 참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사르트르,까뮈의 작품들이나, 니체와 프로이트의 글을 읽을 때
같은 인간으로서 실존앞에서 몸부림치는 그 고독한 노력이 위로가 된다
자살을 하던 자살을 부정하던 초인이 되던 신은 없다고 부정하던
의미를 찾지 못하면 그저 단순히 실재하는 존재로
물음표만 남기고 살다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닌가
실존의 한계를 깨닫고 마주하고 목도되는 진리는 그 안에서 더욱 견고해지지 않겠는가
무턱대고 품는 희망따위 말고,
"제가 출구란 말을 무슨 뜻으로 쓰는지 똑바로 이해받지 못할까 걱정이 됩니다
저는 이 말을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빈틈없는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일부러 자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방을 향해 열려 있는 자유라는 저 위대한 감정을 뜻하는게 아니거든요
....
만약 제가 앞서 말씀드린 저 자유의 신봉자였더라면,
저는 분명 이 사람들의 침울한 눈길에서 제게 보여진 출구보다는
망망대해 쪽이 낫다고 했을 겁니다."
<학술원에로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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