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이상2012. 6. 16. 10:15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책 한 권 갖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우기를 보냈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고독이라는 짐승에게 잡혀 있음을 절감했다.
그것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쓸쓸한 강당에 찾아와서 하고 싶은 말을 몽땅 내뱉은 뒤에 유유히 사라지는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짐승같았다.   80p



단순히 세계문학을 다양하게 접하고자 하는 의도로 골랐던 책.
아프리카나 남미의 문학은 일본이나 프랑스의 그것만큼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가르시아 마르케스나 치누아 아체베등 우리에게 접근성을 좀 떨어지나 
이미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노벨문학 수상자들의 글을 주로 책상위로 가져오곤 했다
그러다 가지를 뻗듯 만나게 된 칠레 루이스 세폴베다의 소설.

읽을 때 술술 읽히는 책도 좋지만 책장을 쉽게 덮지 못하게 하는-읽고 나서 더욱 사유하게 하는 책을 주로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전자와 후자를 다 만족시키는 작품이었다
처녀성을 유린당한 아마존의 단편을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의 삶에 비추어 그려낸 이 소설이
다른 대륙이지만 더욱 긴 시간 침략자들에게 유린 당해온 아프리카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는
치누아 아체베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연애소설'이라는 남녀의 사랑을 다룬,
어쩌면 인간의 삶에서 가장 비현실적이며 마술적인 그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는 주인공 안토니오 호세의 모습은
못다 이룬 꿈에 다가가고 싶어하며 현실의 도피처를 갈구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연애소설 속에 베네치아를 아무리 상상해내려해도 해낼 수 없고 사랑의 행위를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불가능한 그이지만
이기의 역사속에서 오로지 연애소설을 탐닉하는 것이 탈출구가 된다

그래서 암살쾡이와 사투를 벌이고 난 그가 다시금 연애소설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이
역사적 비극의 단편이기는하나,
안토니오 호세가 그만의 도피처로 향할 수 있음이
나를 조금은 안심시켰던 것 같다

지구촌이라는 이제 우리에겐 더이상 새로울 것 없는 그 말이
세풀베다의 말처럼 가진자와 없는자의 차이가 지나치게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사회속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지역을 더욱 소외시키는 개념이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문학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이 조각이기는 해도 삶이라는, 역사라는 숲을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음에 감탄한다


Posted by 키 작은 프리데만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