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5월호
어느 덧 한 달을 계획했던 이집트 여행도 채 일주일이 남지 않았어.
어렴풋하고 모호하기만 했던 첫 느낌도 어느새 내 안에 또렷한 무엇이 되어 이제는 익숙함으로 이 곳을 말하고, 그려내고 있더구나.
만약 누군가 세계일주를 꿈꾼다면, 단연 이집트의 고대유적들을 상상하며 세 손가락 안에 이집트라는 나라를 꼽지 않을까?
내게도 이집트는 그러한 나라였어.
맨 처음 세계일주를 하자고 부르셨던 그분의 음성에 나는 콧방귀를 뀌며,
"하나님, 제게 세계일주라 함은 몽골의 고비사막, 이집트의 피라미드, 페루의 마추픽추 정도는 가보는 것이 세계일주인데, 하나님 지금 그걸 저보고 하자고 말씀하시는거예요?" 라고 되물었지.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나는 피라미드가 있는 그 이집트에서 이 글을 적어내려가고 있음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어.
이집트는 내게 38번째 나라이기도 해.
여행 중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은 여행을 하는 목적과, 재정을 어떻게 모아서 여행을 나왔는지에 대한 것이야.
물론 후자에 대한 질문이 훨씬 많지.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저 웃어 넘기는 것 뿐인 것 같아.
편도표 한 장 들고 나와, 단 하루도 보장받을 수 없는 여행을 시작한 지 또 다시 일곱달 째야.
2년 7개월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여행했고, 하고 있지만 매 순간 앞에서 여전히 쉽지 않아.
너는 이해할 수 있을까
세계일주이라는 화두는 내 삶에서 결코 결정적인 꿈이 아니란걸.
생각보다 낯을 많이 가리고 낯선 환경에서 내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위축되는지,
웃을지 모르겠지만 집 밖에 나가는 것을 얼마나 귀찮아 하기도 하는지-
첫 발걸음을 떼었던 2008년, 그 1년 5개월동안
이전에 보지 못했던 엄청난 자연과 풍경앞에 내 감격과 설렘은 이미 역치값을 찍었다고 해얄까
그 후로는 어떤 세상을 보아도, 나를 흔들만큼 새로운 것들은 없는 것 같아
높은 설산, 끝이 없는 초원과 사막, 에멜랄드빛 바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뒤엉킨 끈적한 세상.
그 속에서 숨 막힐 듯 늘어진 여름과 온 세상 멈춰버린 듯한 겨울을 맛 보았고,
인생같은 사랑을 알기도 했고, 잃기도 했고-
세 번째 길에 오른 지금, 이제 여행은 내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내가 거쳐내야하는 삶의 시간표임을 알았어.
내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는 이 길을 갈 수가 없어.
유목민의 고단함이 내 시간의 곳곳에 파고 들어와 나를 붙잡고 늘어질때면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 이 길에서 돌아서고 싶어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니야.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위로하실 수 있음을 알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는 눈물을 흘려야 할 때면,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홀로 부유하는 버려진 섬 같이 느껴져.
나 역시 내 또래의 친구들과 같은 화제를 안고 살고 싶고, 소유에서 오는 안정감을 누리고 싶고, 보이는 것이 안겨다 주는 미래를 보장받고 싶을 때가 있어.
아니, 적어도 어떤 공동체 안에서 연대 의식이라도 느끼며 길을 걸어가고 싶다는 당연한 소망도 있어.
하지만 멈출 수 없는 것은 어디로 가야하는지, 이 길의 끝은 무엇인지 하나님만이 아시고 여행과 내 삶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기 때문이지
버텨내야만, 내가 걸어가야만 알게 되는 어떤 시간을 기대하며 이 순간 그분과 동행하며 버텨내고 있어.
쉼이 필요한 사람들이 얼마나 여행이란 것을 소망하는지 잘 알고 있어
그들에게는 나의 이런이야기가 사치처럼 들릴 수 있을 것이란것도.
하지만 대학을 자퇴하며, 무일푼으로, 편도표 한장들고, 비행기에 올라야했고,
당장 내일 하루를 보장해 주는 재정적인 상황없이, 그 어떤 후원자도 없이 오른 여행길을 부러워하지는 않을거야
가진 돈은 2만원이 전부인데, 입술로는 이제 저 국경을 넘어 다른나라로 갈 것 이라는 선포.
당장 도착해서 어디로 가야할지 무슨 돈으로 숙소를 구해야할 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아는 이 한 명 없는 그 곳으로 오르는 믿음.
여행 이 후의 시간에 대한 신뢰.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시간, 고독과의 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 앞에서 나는, 나와 함께 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고 초청하신 그 분의 부르심에만 반응 할 뿐이야.
내겐 그것이 나의 상황에 앞선 '진리'이기 때문이지.
7년째 세계 일주라는 화두로 나를 붙잡아 두시고 그 안에서 훈련하시고 물위를 걷는 방법을 알려주시고 세상을 거슬러 사는 방법을 깨닫게 하시는 주님.
그 하나님만이 내 삶의 유일한 보호자이시고, 내 삶의 기쁨이시고, 목적이 되심을 온 실존으로 알게 하셔.
그 분의 실제적인 이끄심이 매 순간 필요하고 그래서 그 실제적인 도우심을 나는 매 순간 맛보고 있다고 해얄까
사람들이 통장의 잔고로, 자신의 위치와 소유로, 꿈에 대한 성취로, 누군가와의 관계로 안정감을 누리고 있을 때
나는 하나님 이외의 그 어떤 것도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
하나님 없이는 나의 이 여행 아무런 의미가 없고, 내가 만난 세계는 그저 내 오만한 경험이 될 수 밖에 없을거야
시체같이 병들어 일어날 수 없었던 내게 찾아오셔서 나와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고 고요히 부르시던 그 밤을 시작으로-
하나님의 침묵이 피조물에게는 얼마나 고통인지 알게 하시고, 또 다시 내 두 손 붙잡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
꿈 꿀 수 없던 내게 하늘 소망을 알게 하시고, 새로운 생명으로 살게 하신 그 분이 내게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고 부르셨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감격해.
그 분이 약속이 되어주시고 꿈이 되어주시고 나의 인생이 되어주셨다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나의 전부야.
하나님은 결코 내게 돈을 주시고 여행을 가라고 하시지 않았고, 그저 누구와 함께 이 길 위에 서 있는지를 물으실 뿐이었어.
그것이면 족하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 위에 발걸음을 내딛기 원하셨어
하나님은 벼랑 끝에서 이미 떠밀려 허공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그 시간에도 내가 안전함을 믿으라고 하시는 분이셨어
여행을 가자고 부르시고서는 긴 침묵으로 나를 덩그러니 외면한 듯 일년이 넘도록 두시기도 하셨고,
여행 중 숙박비가 없어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지켜보시면서도,
고아같이 왜 버려두시냐고 원망하는 목소리를 들으시면서도,
내가 그 상황속에서 그저 신뢰함으로 견뎌내기를 바라셨어.
아직도 부모님과 단칸방에 살아야 하는 가진 것 하나 없는 내가
문둥병 같은 아토피로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체육시간 단 한번도 온전히 나가서 뛸 수 없었던 내가
어느 덧 38개국, 그렇게 3년이 가까운 시간 여행을 하고 있고, 아직 밟아야 할 땅이 더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
지금까지 밟은 땅들과 지내온 시간이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신실하신가를 말해주고 있어.
당장 카이로로 넘어가야 하는데, 만오천원짜리 티켓도 끊을 수 없는 상황을 바라보면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기도 해
하지만 상황을 보고 발을 내딛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말씀에 의지하여 발을 내딛길 주님은 언제나 보고 싶어하시고
그 때 넘쳐흐르던 요단강이 말라 갈라졌음을 기억하게 하셔.
기도하며 말씀을 보는데 여호수아에게 하셨던 말씀을 보게 하셨어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그러니 강하고 담대하라"
그래 나는 그것이면 족한 것 같아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신 동행'. 그것으로 나는 이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것 같아
내가 해야하는 것은 돈을 어떻게 구할까, 여행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없을까,
돈이 없으면 여행 관 둬 버리지하며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상황 앞에서 불안과 두려움과 맞서 강하고 담대히 부르심에 따라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이고,
인도하심에 따라 물이 넘실대는 요단강에 발을 적시는 것이지.
이렇게 오랜만에 네게 메세지를 띄우는 이유도
내게는 믿음의 선포의 의미이기도 해
여전히 두려워
세계일주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보다
무거운 짐을 매달고 숙소를 찾아 헤매이고, 낯선 이들과 끊임없이 마주쳐야 하고, 이동에 이동을 거듭해야 하고,
익숙해진 무엇과 정해진 헤어짐을 해야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단 한순간도 앞서서 계획할 수 없음에 익숙해져야하고,
상황에 거슬러 고백해야 하고, 그리고 이 시간이 언제까지 일지 알 수 없지만 버텨내야 하는 것이 힘들어.
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긴 유목민의 삶을 가르치시는 것 같아
삶으로, 시간으로, 통과해 내지 않으면 그저 허울좋은 관념에 머무를 수 밖에 없을 귀중한 가치와 하나님의 세계를
내 온 몸에 새기시고 가르쳐 주심에 감사해
정주민이 누리는 소유를 기대할 순 없지만, 드 넒은 대지를 품고 반짝이는 별을 헤아리는 두 눈을 가진 유목민.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할 줄 알고, 계절에 따라 순응하며 겸손히 살아가는 그 유목민의 삶이
도리어 정주민에게 새로운 문명과 세상을 전해주는 통로였음을 기억하며
이 시간을 잘 통과해 내고 싶어.
친구야 함께 기운내자 :)